[천자칼럼] 쿨리(coolie)

입력 2015-09-30 18:11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그는 갈대로 짠 바구니를 타고 절벽에 매달렸다. 바구니 위쪽에는 네 개의 작은 구멍이 뚫려 있다. 그 사이로 손을 뻗어 정과 망치로 암벽에 구멍을 뚫고 화약을 조심스레 끼워 넣었다. 떨리는 손으로 심지에 불을 붙인 다음에는 힘껏 고함을 질렀다. 그 소리에 맞춰 절벽 위의 동료들이 재빨리 밧줄을 잡아당겨 바구니를 끌어올렸다. 엄청난 폭음과 돌먼지 속에서 하얗게 질린 그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더니 다시 바구니를 타고 내려갔다.

1865년 미국 동서부를 잇는 대륙횡단철도 공사 중 최악의 난코스였던 시에라네바다 산맥. 깎아지른 협곡과 경사 75도 이상의 산허리를 뚫는 암벽발파 작업은 모두 중국 노동자들 몫이었다. 잠깐만 한눈을 팔면 목숨이 날아갔다. 이곳에 투입된 1만2000여명 중 3000여명이 희생됐으니 넷 중 한 명꼴이다.

이들은 자신의 이름 대신에 통칭 쿨리(coolie)라고 불렸다. 고된 일이란 뜻의 중국어 쿠리(苦力)에서 나온 말이다. 막노동꾼이란 뜻의 힌두어 큘리에서 유래했다는 설도 있다. 사전적으로는 19~20세기 중국, 인도 등 아시아계 이민자 중 단순 노동자를 일컫는다. 청나라 말인 1849년부터 미국 캘리포니아로 이주한 중국인 노동자는 10만여명에 이른? 샌프란시스코 금문교와 뉴욕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 건설 현장에 투입돼 숱하게 희생된 것도 이들이었다.

강의 물살을 거슬러 배를 끌거나 부두에서 험한 일을 도맡아야 했던 저임노동자. 사탕수수와 선인장 농장에서 피땀을 흘린 한국인들의 애니깽 사연과도 닮았다. 요즘의 조선족 노동자와 필리핀 가정부, 인도네시아 잡역부도 비슷한 처지라고 할까. 하지만 그 시절 쿨리의 노역에 비하면 고생이랄 것도 없다. 철도가 새로 뚫리면 으레 ‘침목 하나 놓을 때마다 중국인 한 명이 죽어나갔다’는 말이 나돌았으니 오죽했을까.

그런 중국이 지금 세계 철도망을 휩쓸고 있다. 지난주 미국 로스앤젤레스(LA)~라스베이거스(370㎞) 고속철도 프로젝트에 이어, 그제는 인도네시아 자카르타~반둥(150㎞) 고속철 공사까지 따냈다고 한다. 고속철도 선두주자인 일본을 잇달아 제친 것에 세계가 놀라고 있다. 승리 비결은 일본의 3분의 1에 불과한 건설비용, 최고 시속 486㎞에 이르는 기술력이라고 한다.

중국의 세계 고속철도 시장 점유율은 이미 절반을 넘었다. 기술 수준도 종주국 프랑스를 위협하고 있다. 한때 몸으로 때우던 쿨리의 나라가 최첨단 기술로 세계를 누비고 있으니 격세지감이라고 해야 할지.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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